이곳은 조금만 유식하게 말하자면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지입니다.

이 마을 역시 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아주 가까운데 아영면 소재지로 향해서 면사무소에 이르면 사거리가 나옵니다. 좌회전해서 직진하면 곧바로 성리입니다. 지금은 이 마을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쪽 산비탈은 상성(上城), 아래쪽은 하성(下城)마을로 불립니다.

흥부가 형에게 쫓겨난 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등 각지를 떠돌다 처음 돌아온 마을 복덕촌은 저 산 너머 장수군 번암면 복성리로 알려졌고, 얼마 후 다시 지금의 마을인 남원시 아영면 성리인 이곳으로 이사했습니다. 복성리 바로 옆마을입니다. 노스님이 일러준 이 땅으로 옮겨 집을 지은 것입니다. 이사 후 제비와의 인연을 맺게 되고 박씨를 터뜨려 대박부자가 되었지요.

↑ 고향 집에서 형에게 쫓겨난 흥부가 타향살이 하다 고향 20리 밖 마을로 들어와 정착한 성리, 여기서 박씨 물고 온 제비로 발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아무리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지만 ‘제비와 박씨’ 내용 부분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죠? 이는 아마 흥부의 인생역정을 극적인 소재로 삼기 위해 ‘제비와 박씨’를 살짝 차입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면 흥부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요. 실제 이곳은 예전에 사금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고승께서 흥부에게 사금이 많이 나는 그 곳에 집을 짓게 했고 흥부는 사금으로 부를 일구지 않았을까 하는 건데, 이는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우리가 배운 건 ‘제비와 박씨’가 부의 밑거름이랍니다. 제가 어떻게 이 훌륭한 작품을 넘어서겠습니까.

이 마을에서 흥부가 태어나 자라던, 즉 형 놀부가 사는 성산마을까지는 대략 20리(8km) 내외 되는데 하도 배고파 형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가 따귀만 맞고 되돌아 오죠. 돌아오다가 너무나 지치고 허기져서 쓰러졌는데 그 고개가 ‘허기재’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쓰러진 흥부를 주민들이 업고 와 흰죽을 쑤어 먹여 살렸는데 훗날 부자가 된 흥부가 보답하기 위해 마을사람들에게 논을 사주었고 사람들은 이를 흰죽배미논이라고 불렀답니다. 아직도 있습니다.

↑ 흥부(흥부의 실제모델이었던 인물)이 직접 팠다는 우물 참샘. 아직도 보존돼 있습니다.

이 상성마을에는 흥부가 팠다는 참샘이 있고 산비탈에는 그의 묘도 있습니다. 제가 간 날은 지리산 일대 눈이 많이 와서 참샘까지는 올라가 봤지만 흥부의 묘에는 도저히 갈 수 없어 아쉽게 돌아섰습니다. 이 묘에서는 해마다 마을주민들이 흥부제사를 지내줍니다.

마을회관에서 86세의 이종득 할머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흥부에 대한 애착이 아주 많으셨습니다. 흰죽배미논이며 참샘이며 허기재 등등 다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름들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고 자랑하십니다.

흥부의 집은 자리를 옮겨 하성마을 도로 건너 한적한 언덕 위에 지어놓았습니다. 디딜방앗간도 있습니다. 관광객 때문에 마을이 시끄러워서 옮긴 듯 한데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 찻길을 사이로 위쪽이 상성, 아랫쪽이 하성마을.

이 동네는 봄이면 철쭉동산으로 변하는 봉화산 줄기에 있어 봄에는 도로가 마비될 정도라고 하는데요, 어쨌든 착한 흥부가 복을 받아 잘 살았다는게 중요하지요.

흥부 발복지(發福地), 이 마을에 와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도 착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선한 자에게 이렇게 인생역전이 있습니다.

흥부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은 서울로 떠났고 마을사람들은 지금도 잊지않고 매년 정월 보름 그의 제사를 돌보고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 흥부의 집을 근처로 옮겨 지은 초가집.

↑ 흥부 집 마당에 있는 디딜방아.